[스크랩] 우문호(宇文護) : 중국역사에서 황제 3명을 죽인 인물 우문호는 자가 살보(薩保)이며, 우문태(宇文泰)의 조카이다. 우문태는 북위(北魏)의 효무제 원수(元修)를 죽이고, 다시 서위의 문제 원보거(元寶炬)를 황제로 앉힌다. 원보거는 16년간 황제를 무사히 마치고 편안하게 죽는다. 그 후 그의 아들 원흠(元欽)이 즉위하는데, 2년간 황제를 지낸 후 우문태가 권..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채경(蔡京) : 굶어죽은 탐관 송나라때 나대경이 쓴 <<학림옥로(鶴林玉露)>>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어느 사대부가 개봉에서 첩을 한 명 사왔다. 그 첩은 스스로 채태사(蔡太師) 진에서 포자주(包子廚, 만두를 만드는 부엌)에서 일했다고 하였다. 어느날 첩에게 포자(만두)를 만들라고 하였던, 그녀는 못한다고 하였다. ..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서하황제 이원호(李元昊)의 후궁 이원호(李元昊, 1003-1048). 서하국의 개국황제. 하국(夏國)의 왕 이덕명의 아들이다. 1028년에 회흘을 깨뜨리고, 감주(甘州)를 획득하여 태자에 오른다. 항상 부친에게 송나라에 칭신(稱臣)하지 말도록 요청한다. 1032년 부친이 죽자 왕위를 이어받고, 송나라로부터 정난군절도사, 사평왕에 봉해진다. 하서..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이청조(李淸照)와 조명성(趙明誠)의 사이에 왜 자식이 없었는가? 글: 정계진(丁啓陣) 조명성과 이청조의 사이에 자녀가 없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는 두 가지로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조명성과 이청조의 두 사람은 아무도 시나 글에서 자녀에 대하여 말 한마디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문헌의 기재에 의하면 그들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홍..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양업(楊業)과 악비(岳飛)에 대한 또 다른 시각 글: 위득생(魏得生) 송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어 북송과 남송이라고 부른다. 양업과 악비는 한 사람은 북송의 명장이고, 한 사람은 남송의 명장이다. 전통적인 역사학자들은 양,악의 두 집안에는 영웅들이 많고, 온 집안에 충신과 열사가 나온 것으로 칭송하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또 다른 시각을 지..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아구타(阿骨打) : 금나라의 시조 흑룡강성 아성시의 아구타 어용(御容)으로 알려진 마애석각 탁본 아구타(完顔阿骨打, 1068-1123)는 여진인이다. 그가 창건한 금(金)나라는 중국역사상 3가지 주요한 흔적을 남겼다: 요(遼)나라를 멸망시키고, 북송(北宋)을 멸망시키고, 북경(北京)을 처음으로 수도로 삼았다. 이중 첫번째 일은 아구타 자신..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중국과 영국의 대면(건륭제와 영국사신 맥카트니) 영국전함 사자호 매카트니가 북경에 머문 곳 서기 1792년 9월 26일, 영국의 황실전함 "사자호"와 "인두스탄호"등 몇 척의 배가 영국을 출발했다. 이것들은 영국왕 조지3세가 파견하는 방대한 중국방문사절단의 선박들이었다. 사절단의 단장은 조지 맥카트니(George McCartney)였으며, 부단장은 조지 스탠튼(Geo..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건륭제(乾隆帝)의 출생지에 관한 수수께끼 청나라의 황제 12명중에서 출생지에 대하여 이론이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누르하치이고, 다른 한 사람은 건륭제이다. 누르하치는 출생당시에 만주글자도 없었고, 출생당시에는 그다지 뛰어난 집안도 아니었으므로 이해가 되지만, 건륭제와 같은 경우에 출생지에 대하여 논란이 있다는 ..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건륭황제와 인구통계 작자: 후양방(侯楊方) 1793년, 이미 황제의 자리에 58년간 앉아 있던 건륭황제는 그의 조부인 강희황제의 실록(성조인종제실록)을 뒤져보다가, 강희49년(1710년)에 전국의 민수(民數)가 "2331만2200여명"이라고 기재한 것을 보았다. 그래서 건륭57년(1792년)에 각성에서 보고한 민수를 확인해보니 "3억746만7200여..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청태종(淸太宗)의 즉위에 얽힌 이야기 청태종의 이름은 홍타이시(皇太極)이며, 1592년 11월에 누르하치의 8째아들로 태어나서 1626년에 황제에 오르고, 1643년 9월에 사망하였다. 청태종은 황위를 노리기에는 여러가지 면에서 불리한 점이 많았다. (1) 모친이 홍타이시 11세에 사망하였다. 그리고, 모친은 정식으로 대푸진(황후)가 아니었다. 홍타.. 역사인물 2008.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