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중국역사상 4대 추녀 1. 막무(女+莫, 毋) :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黃帝)의 처.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막무의 모습은 야차와 비슷하여, 추악하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4대추녀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막무의 후덕함은 당시 여인들의 귀감이 될만하였다. 시인 굴원(屈原)도 막무에 대하여는 아주 높이 평가하였..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중국역사상 세 사람의 백치황제(白痴皇帝) 중국역사상 백치황제(바보황제)는 모두 3명이 있었다. 첫번째이자 가장 유명한 바보황제는 서진(西晋) 혜제(惠帝)인 사마충(司馬衷)이다. 그는 진무제 사마염의 적차자였는데, 그의 형인 적장자 사마궤가 어려서 죽자, 적장자의 지위에 올라, 동국태자가 되었다. 당시 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관원들은..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중국역사상 10대 명의(名醫) 1. 황제(黃帝) : 침구(針灸, 침과 뜸)의 창시자. 황제는 전설상의 중화민족의 선조이다. 현재 존재하는 <<황제내경>>은 황제가 기백(岐伯), 뇌공(雷公)과 의학에 대하여 토론한 저작이다. 이 책에서는 침을 놓는데 대한 기재와 논술이 특히 상세하다. 2. 편작(扁鵲) : 맥(脈)학의 창시자. 성은 진(秦)..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중국역사상 10명의 위군자(僞君子) 먼저 설명할 것은 10대 위선자의 기준이다. 첫째, 그들은 위선자이지, 큰 악인은 아니다. 그러므로 흉악하게 사람을 도살했던 진시황이나 초패왕 항우는 포함되지 않는다. 둘째, 그들은 잘 숨어져 있던 위선자들이므로, 현재까지도 숭상을 받고 있다. 비록 약간의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왕망과 같..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부부금슬이 좋았던 황제-황후 제1위 : 명효종(明孝宗) - 장황후(張皇后) 명효종과 장황후가 1위에 꼽힌 것은 일부일처(一夫一妻)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황제의 지위에 오르고 나서 일부일처, 즉, 황후이외에 다른 후궁을 전혀 두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사람들이 흉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도 평생을 황후하나만 사랑..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중국역사상의 태상황(太上皇) 태상황은 황제의 부친을 얘기한다. 첫번째로 태상황에 오른 인물은 진(秦)의 장양왕(莊襄王)인데, 사후에 아들인 진시황에 의하여 추존된 것이다. 두번째로는 한고조 유방이 자기의 부친인 태공(太公)을 태상황으로 하였는데, 이 초기의 두 태상황은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의 태상황, 즉 "황제를 거쳐 ..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죽림칠현(竹林七賢), 음중팔선(飮中八仙) : 허구의 두 개 그룹 글: 정계진(丁啓陣) 중국의 유구한 문인음주역사상, 위진(魏晋) 시대의 "죽림칠현"과 당나라 장안의 "음중팔선"은 가장 유명한 두 개의 음주그룹이다. 다만, 고증을 해보면, 이 두개의 그룹은 실제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룹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당시 혹은 후인들이 그들의 사상이나 기호가 비슷하..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동관(童貫) : 중국역사상 왕으로 책봉받은 유일한 환관 동관(1054-1126)은 자는 도부이고 개봉사람이다. 북송의 환관이었다. 동관은 전설과도 같은 희극과 비극을 고루 갖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일생동안 몇가지 중국최고기록을 작성하였는데, 이것은 아마도 중국역사상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불멸의 기록이 될 것이고,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남편을 다섯번 바꾼 소황후(蕭皇后) 역사상 한 시대를 풍미한 경국지색의 여인은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소황후처럼 여러 황조를 거치면서, 계속 황제의 곁을 지켰던 여인은 드물다. 그녀는 13살 때 진왕비(晉王妃)가 된 이후에 계속하여 신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수양제(隋煬帝)의 황후, 우문화급(宇文化及)의 숙비(淑妃), 두건덕(竇建.. 역사인물 2008.04.20
[스크랩] 풍도(馮道) : 5개황조 10명의 황제를 모신 직업재상 풍도(882-954)는 당나라가 망한 후, 송나라가 들어서기까지의 5대10국시대의 걸출한 직업관료이다. 그는 모두 10명의 황제를 5개의 황조에 걸쳐 모신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는 후당과 후진에서는 재상, 요태동 야율덕종이 후진을 멸한 후에는 태부를 후한때는 태사, 후주때도 태사를 역임한 특이한 경력.. 역사인물 2008.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