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이불권(拳而不拳),장이불장(掌而不掌),사권비권(似拳非拳),권권장장(拳拳掌掌)- 권이 권이 아니고 장이 장이 아니다. 권과 비슷하나 권과 다르지만 또한 권은 권이요 장은 장이다」 이것이 곧 당랑권의 정수다.
왕랑이 창시한 당랑권은 그 제자인 입산도인(入山道人)에서 청전대인(靑田大人)으로 전해졌고, 다시 소적 산(小赤山) '이병소(李秉蕭'로 적전(嫡傳)이 이어졌다. 이병소는 부친을 따라 남쪽 지방을 여행하다가 감옥에서 우연히 한 도적을 만난다. 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 는 진맥을 하고 약을 처방하여 그 도적을 구해줬는데 얼마후 갑짜기 그 도적이 나타나서 전날의 구함을 감사 하며 병을 고쳐준 답례로 무예를 가르쳐 주마고 했다. 이병소에게는 남다른 자질이 있었던지 짧은 기간에 깊은 진전이 있었다. 대적산(大赤山) '조주(趙周),는 이런 이병소의 뛰어난 제자로 그의 무예는 엄청나게 강해서 당세에 적수가 없 었다. 그는 자신의 무술 진수를 양몽향(梁夢香)에게 전했으며 양몽향은 이를 다시 강화룡(姜化龍)에게 전하 니 그가 바로 당랑적전(螳螂嫡傳) 6대조사(六代祖師)였다.
강화룡에 대해서는 이런 재미난 일화가 있다. 강화룡은 산동성 출신으로 중국 황실의 자손이였지만 가세가 곤궁하여 그 당시 부자로 소문난 양몽환의 집에 서 하인으로 살았다. 그는 주인인 강화룡이 당랑권에 뛰어난 고수임을 알자 자신에게 무예를 가르쳐 줄것을 애걸한다. 그당시 당랑권은 두문불출(逗門不出)의 비전(秘傳)으로몇몇 제자에게만 전해졌고 일반일에게는 전수가 엄격히 금기시 되어있던 신비속의 감추어진 무예였다. 양몽환은 강화룡의 신체조건을 볼때 제대로 배울수 있을것 같지가 않았지만 시험삼아 가르쳐보니 동작에 영 묘함이 있어 마침내 적전제자로 삼아서 당랑권의 비결을 모두 전수했다. 정식으로 배우게 되자 강화룡은 그 숙달이 매우 빨랐고 동작이 정확해 져서 가히 일취월장을 이루었다. 또한 규율을 엄격하게 지켰기 때문에 스승인 양몽환도 놀랄리 만큼 빠른 성취를 이루었다. 강화룡은 키가 5척밖에 되지 않은 땅달보였고 몸도 뚱보여서 작고 살찐 그의 움직임이 때로 통나무가 굴러 다니는듯한 모습이여서 보는 이로 하여금 폭소를 터트리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퇴부가 기둥같았 고 게다가 발은 사각형이여서 마치 돌판위에 둥근 말뚝을 세운 느낌이었고, 따라서 동작이 안정되고 민첩하 여 빠르고 손기술에 능한 당랑권을 익히는데 천부적인 체질이여서 그의 공격력과 파괴력은 누구나 두려워 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
(매화수법(梅花手法)은 매화꽃잎이 5장인데서 비롯된 말인데 이를 5가지 연속기술에 비유하여 생긴 명칭이다.이 수법은 1호흡 사이에 5타(打)라 하여 한순간에 5가지 기술 을 완성시킨다.(1)페수붕추,(2)좌가타,(3)우벽추,(4)우붕추,(5)좌반좌충추의 다섯가지 연속수법이 그 한예(例) 이다. 매화당랑권 뿐만 아니라 칠성당랑권에서도 오타연환벽 (五打連環劈)이라는 매화수법이 있으며 비파문에는 오연추(五連錘), 팔보당랑에는 연 오타(連五打)등 각기 호칭은 다르지만 매화수법이 포함되어 있다) 어느날 강화룡의 제자가 결혼식을 올리는 자리였다. 술을 마시고 있는 중 참석자중 '송이야' 라는 별칭을 가 진 무술가가 닥아와 그의 무술기법에 대해 언급하며 은근히 멸시하는 기색을 보였다. 송은 대대로 청나라의 관리를 지낸 인물로 그 자신도 상당한 쿵후의 고수였다. 이윽고 잔치가 끝나고 강화룡이 돌아 가려고 할때 다시금 송이야가 나타나 기술을 보여 달라고 시비를 걸었 다. 먼저 장원의 넓은 마당에서 송이야는 궁보(弓步)를 밟으면서 "강사부! 잘 보시오'"하면서 뒷발을 힘껏 내 딛으니 그 자리에 발자욱이 선명히 찍혔다. 바로 천근추(千斤錐) 신법이였다. 송이야는 으쓱대며 " 어떤가? 강화룡 ? "하고 뽐냈다. 딱딱한 맨땅에 내력으로 발자욱을 찍는건 확실히 범상 한 실력이 아니였다. 강화룡은 겸손하게 "나는 무엇을 보여드릴까요?:했다. 송이야는 태연한 강화룡의 모습을 곁눈질로 노려보더 니 "강사부! 당신이 나와 똑같은 기술을 보여준다 해도 나는 결코 당신의 쿵후에 감탄하지 않을 것이오" 하 면서 한손을 뻗어 짝달만한 강화룡의 머리를 무례하게 쓰다듬었다. 송이야의 버릇없는 행동에 화가 난 그는 단단히 혼을 내주리라고 마음 먹었다. 옛 중국식장원에는 '빗장'이라 하여 문안쪽에 가로로 단단한 나무를 질러 잠그게 되어 있었다. 그 빗장은 집이 클수록 두껍고 높았는데 장원의 빗장은 두께가 다섯치(15Cm)의 견고하기 짝이 없는 자단목 이였다. 강화룡은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순간 몸을 낯우며 오른팔 꿈치로 빗장을 쳤다. 큰 소리를 내며 그 빗 장이 둘로 쪼개지는 것이 아닌가? 크게 놀란 송이야는 백배사죄하고 강화룡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둘로 짤린 빗장은 그뒤 송이야가 자신의 연습장에 걸어두고 기념으로 삼았는데 세월이 흘러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하여 산동으로 쳐 들어왔을때 송이 야의 방에 걸려있는 빗장을 보고는 매우 흥미를 느꼈는데 그 유래를 듣고 한결같이 놀랐다고 전해진다. 이 전설을 듣고 난후 필자는 훗날 도장에서 사법자격심사인 4단 승단시 피켄으로 통나무등걸을 필히 격파하 는 심사과목이 들었던 이유를 이해하고 아하!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선배들의 후일담으로는 예전 초창기때에는 송판을 바닥에 놓고 발로 밟아 부시는 천근추 심사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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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룡의 당랑권은 출신입화(出神入化)의 경지에 올라 북방 무림계에서는 그의 이름을 모르면 당랑권을 수 련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특히 그의「 매화삼수권(梅花三手拳)」은 권법사상 전무후무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강화룡은 매화삼수권의 기법을 일식(一式)을 오식(五式)으로, 오식을 이십오식(二十五式)으로, 이십오식을 백이식오식(百二十五式)으로 변화시켜 매화꽃잎 모양이 되게하여 당랑의 형태에 삽입시키고 말과 원숭이의 보법을 배합하여 보다 빠르고 맹열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십팔가종법(十八家宗法)의 장점을 다시 가미하여 이윽고 매화삼수권을 강유(剛 柔)가 겸비된 완벽한 권법으로 발전시키니 후세인들이 그를 일러 「 매화당랑능수(梅花螳螂能手)」라 불은것 도 과장은 아니였다.
매화삼수권의 전수 순서는 처음이 매화로권(梅花路拳),다음이 매화권(梅花拳), 마지막으로 매화수권(梅花手 拳)이다. 모든 권기(拳技)가 매우 복잡하며 맹공경격(猛攻硬擊), 선수후공(先手後攻), 장수원격(長手遠擊),단 수근타(短手近打)등 의 엄격한 기술을 모두 익혀야 한다. 매화삼수권의 정화(精華)는 상중하 삼로(三路)를 동시에 공격하므로 이 점이 여타 권법과 특히 다른점이며 또한 전권(全拳) 의 동작이 물흐르듯 연결되어 있어 끊힘없이 그 초식이 펼쳐지고 부드러우면서도 무한한 위 력을 지닌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수법이나 보법이라 할지라도 거리를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하면 상대방을 제압하기는 커 녕 오히려 역습을 당하기 마련이다. 표진보법(標進步法)이나 철퇴보법(撤腿步法)은 신속하고 민첩하여 진격시 주저하거나 후퇴시 맘설이면 오히려 빈틈을 보이므로 이로 인한 패를 자초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매화로(梅花路)는 매화삼수권의 첫째로 수법이 영활(靈活)하고 정순(精純)하면서 초식구성이 다른 두 권에 비해 비교적 간결하다.전체로 기법이 강맹한 것이 그 특징이며 반차수법(反車手法)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동작이 좌우동작 횟수가 균등하고 허수(虛手)와 실수(實手)가 분명하다. 매화로권은 매화당랑 매화로만 해도 여섯종류나 된다고 한다, 그 명칭도 매화로, 매화락(梅花落). 또는 매화록(梅花鹿)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각각의 사실여부는 필자의 견문 부족으로 구분할길이 없으나 매화로라는 이름 으로 직접 배운 권법은 본 매화삼수권의 매화로 외에 또 다른 매화로 투로가 있다. 두 권법의 초식이나 품격이 현저히 다른 것으로 보아 아마도 태극당랑 계통의 매화로권이 아닌가 여겨지나 그 진위는 구별할길 없다. 매화당랑의 매화로는 위에 기술대로 강맹 간결하나 태극당랑의 매화로는 구성이 상당히 복잡하고 동작이 난 해하며 강권보다는 유권계통의 기풍이 있으며 전자가 56식의 긴 투로이나 후자는 35식의 짧은 투로인점도 차 이를 느낄수 있다.
매화권(梅花拳)은 그 수법과 보법이 다른 권법과는 뚜렷이 다른점이 있다. 유수(柔手)가 강수보다 많고 자세 도 급짜기 높았다 급짜기 낮았다 하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수련시 힘이 많이 소모되며 다른 권법과 달리 강 유를 균등하게 이용하지 않고 수시로 변하므로 익히기가 어렵다. 수법 면에 있어서도 4-5개 동작이 연결되어 하나의 동작으로 이루어 진다. 이른바 매화수법(梅花手法)이 그것이다. 그러나 같은 매화권이라도 필자가 배운 소림 매화권 두개의 투로는 구성은 물론 품격도 판이하게 달랐다. 당랑매화권이 현란하고 유권인데 비해 북소림 매화권은 질박(跌撲)하고 강수였다. 다만 도약하고 포복하는 변화는 두 권법이 유사해서 당랑매화권의 제5식 쌍제조(雙提爪)나 제8식 천분수(天 分手)와 소림매화권의 단차(單叉)나 금교전(金교剪)은 일맥상통한다. 다만 당랑매화권은 동작이 조밀하고 가슴이 열린 반면 소림매화권은 몸은 속신(束身)하고 동작은 광대해서 리파각(裡坡脚)이나 이기각, 선풍퇴등의 활달한 기법이 많다.
매화수(梅花手)는 매화삼수중 마지막 권으로 당랑권에서는 비교적 짧은 단권(短拳)에 속한다. 매화수는 수법 보법이 빠르게 전개되고 위는 아래를, 아래는 위를 상응 하여 서로 돕는다. 동작 하나 하나가 정묘하여 비록 단권이지만 균형있는 자세를 취하기가 어려우므로 강유의 의미를 바르게 파악하여 독특한 매화수의 품격을 발 휘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다른 여타의 권법보다 장시간 심혈을 기울 려 수련해야 하나 일단 완전히 터득하고 나면 신(身),안(眼),보(步)가 민 첩해져 다른 권법이 감히 따를수 없다. 특히 매화 삼수권을 모두 익히면 서로 보완할 수 있어 긍극의 경지에 도달할수 있다한다.
매화란(梅花攔 )은 그 풍격이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온화하여 일명 동천풍(東天風)이라는 별호가 붙었다. 청죽도장에 입관한 다음해 여름인가 오대산에서 왔다는 한 산승(山僧)이 도장을 찾았다. 최관장과는 속세에 인연이 있어 수년간 사사(私師)한 고로 탁발을 나왔다가 들린 모양인데 그날 먹빛 장삼을 펄럭이며 연꽃이 바람에 날리듯 연무하던 감흥이 지금도 문득 문득 뇌리를 스친다. 그때 그 스님이 표연한 권 법이 바로 매화란이였는데 아직도 그 경지까지 들지못한 초심자인 필자의 눈에는 마치 한마리 회색학(鶴)이 물위를 너울대는 듯한 환상에 빠져 수식(收式)이 다 끝난후에도 멍하니 시선을 뗄수가 없었다. 매화란은 이렇게 아름답고 운취있는 권법이다. 앞뒤로 움직이는 보법은 실바람같이 훈훈하고 휘두르고 뻗는 권은 그림자럼 은은하며 몸을 날려 차내는 선풍 각이나 이기각은 버들잎같이 하늘거렸다. 마치 고전무용을 보는둣한 멋드러진 초식들이였다. 나중 필자가 이 동천풍을 배우고 기분이 울적할때나 피곤할때 춤추듯 한바탕 연무후에 심신이 쇄락해졌던 추억들을 생각하 면 18기의 무한한 예술적 기예는 아무리 탄복해도 넘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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