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대(靑代) 건융(建隆)황제때 숙친왕(肅親王) 영(映)은 무술을 즐겨 각지로부터 무술가를 초청하여 연무를시 키고 그것을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언젠가 궁중에서 연무회가 열려 선발된 무술가들이 저마다 비술을 보이며 기법을 겨루었다. 장대에 앉아 이를 관람하던 숙친왕이 차를 가져오라고 했을때 마침 당번이였던 동해천(董海川)이 명령을 받 드러 차를 갖어왔지만 꽉찬 구경꾼 들로 인하여 뚫고 들어갈수가 없었다. 할수없이 그는 구경꾼을 피하여 뒤로 돌어서는 높은 후원담장을 훌쩍 뛰어 넘었다. 그런데 희얀하게도 그 높은 담장위을 몸을 날렸는데도 동해천이 들고 있던 찻잔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단 한방울의 찻물도 흘러 넘치지 않았다. 이 모양을 우연히 숙친왕이 보게 되었다. 왕은 동해천의 날렵한 몸놀림을 보고 이를 수상하게 여겨 가까히 불 러 경력을 물었다. 동해천은 자신은 하북성 문안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무술을 즐겼으며 한때 강남 설화산 (雪花山)에서 길을 잃어 헤매던중 한 고명한 단사(丹士)를 만났다.노 단사는 학과 같이 고고한 백발의 노인으 로 수염은 배꼽까지 뻗어 있었고 눈빛은 형형히 빛났다. 동해천은 그의 가르침을 받아 때로는 수목 아래서 걷는 보법을 익히며 또는 큰 돌위에서 묵식 단련하며 진전 을 이어받았는데 일수(一手), 일기법(一技法)이 무술의 심오한 경지였다. 동해천은 침식을 잊고 반복하여 원 (圓)위를 걷는 독특한 보법과 장법을 단련하기를 10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단사로 부터 비전서를 전수받았 으니 바로 역학서(易學書)인 하도낙서(河圖洛書)였다. 그 책을 받고 배운바 모든 기법에 역의 원리를 응용하여 하나로 정리하니 마침내 비전의 장법(掌法)을 창안 해 냈다고 대답했다. 동해천의 상세한 말을 들은 숙친왕은 배운바 무예를 연무해 보라고 말했다. 동해천이 연무하는 권법을 본 대중은 깜짝 놀랐다.그가 시전하는 권법의 투로는 이제까지 자신들이 본 용맹 하고 딱딱한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것은 마치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유연하고도 끊임이 없이 전개되었다. 갑짜기 섬전(閃轉)하여 땅에 기듯 이 낮아져서 흡사 한마리의 용이 춤울 추듯이 변화가 무궁한 것이여서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케 했다. 바로 빠과장(八卦掌)이였다.
(팔괘장은 걷는데서 부터ㅡ원주위를 걷는 주권(走圈)은 그 자세를 의마문로(倚馬問路: 말고삐를 끌고서 길을 묻는 자세)라 하며 양팔을 벌리며 걷는 대붕전시(大鵬展翅),한쪽 팔꿈치를 올리는 천마행공(天馬行空), 양손을 밑으로 내리는 표목세(漂木勢)등 여러자 세를 취한다)
빠과장의 이름인 팔괘는 역경(易經)에서 말하는 여덟가지 괘ㅡ건(乾),곤(坤).감(坎),간(艮),진(辰),손(巽),이 (離),태(兌)ㅡ에 바탕을 두고 그 이름을 따온 것이다. 역경에서는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이 생기고 태극은 음과 양으로 나뉘며 여덟가지 방향을 낳는데 이 설 을 쫓아 기본인 팔장(八掌)은 여덟가지로 변화되어 육십사장이 된다고 설명하는데 그 복잡한 이론적 공부는 제쳐두고 여기서는 필자가 수련해본 단환장(單環掌)과 쌍환장(雙環掌),팔괘연환장(八卦連環掌)의 공법을 기 술해 보겠다.
빠과장의 수련 요결은 팔장법(八掌法)과 주권법(走圈法)이다. 빠과장은 이름처럼 주먹을 쓰는것이 아니라 손바닥을 사용하여 적을 타격한다. 여타 권법의 장은 네손가락이나 다섯손가락을 전부 붙혀서 사용하는것이 보편적이나 팔괘장의 장법은 손가 락을 모두 떨어 뜨리는 점이 다르다. 손바닥을 위로 뒤집는 앙장(仰掌),엎어치는 부장(符掌),곧게 세워 치는 수장(竪掌),안으로 끌어 당가는 포장 (抱掌),쪼개는 벽장(劈掌), 빗겨올려치는 요장(擾掌),돋우는 도장(挑掌),비틀어 치는 나선장(羅旋掌)이 팔장 이다.
다음은 팔괘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걷기 연습인 주권이다. '빠과는 걸음부터ㅡ백가지 단련도 하나의 걸음보다 못하다ㅡ걸음을 백가지 단련의 바탕으로 삼는다ㅡ'는 말 이 있으며 이 보행법의 비전(秘傳)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다. 처음 팔괘장의 주권을 몰랐을때 우리 도장에서는 '불법(佛法)'이라 하여 사범을 가운데로 두고 전후좌우로 방 향을 바꾸어 가며 원주(圓走)를 걷는 수련을 했다. 주권은 그 걷는 보법을 창니보(창泥步)라 하며 '진창을 걷는 요령' 즉 발을 높히 들지않고 끌듯이 하며 발바닥 을 평평하게 내린다. 초보일때는 하나의 권주(圈柱)에서 실시하지만 좀더 숙달되면 두개의 붙어있는 원 위에 서 하던가 나아가서는 구궁보(九宮步)라는 아홉개의 원에서 걷는 복잡한 연습도 한다. 창니보는 발끝을 안으로 구속하는 '구보(拘步)'와 바깥으로 제키는 '패보(覇步)' 두가지 보법을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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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환장(單環掌)과 쌍환장(雙環掌)은 팔괘장의 기본 투로이다. 제1식 주권세(走圈勢=倚馬問路)와 제2식 십사수인 회중포월(懷中抱月),제3식 추장(推掌)초식인 페문추월(閉 門推月),제4식 팔꿈치밑으로 찌르는 엽저장화(葉低藏花),제5식 홍안출군(鴻雁出群)에서 다시 주권으로 이어 져 반복하는 투로가 단환장이고, 쌍환장은 촉도횡운,흑웅탐장,뇌후적회,금계살방,연자초수등 10초식으로 구 성되어 있다.
연환장(連環掌)은 제8장법 총 170수로 이어진 긴 투로이다. 투로 전체가 복잡하고 오묘한 기법이 망라되어 있어 이 팔괘연환장을 다 습득하면 명실공히 빠과장의 진수를 터득했다 할수 있다. 불행히도 필자는 연환장 제2장까지만 수련하고 더이상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이 팔괘장은 소림권을 배우면서 틈틈히 독사범(獨師範)을 모시고 사사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당시 중국무술도장에서는 무슨권법 하나에 얼마? 라는 식으로 수업료를 내고 투로(套路) 하나씩을 따로 배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얼핏 들으면 뭐 그런것이 있겠나 싶지만 우리나라 도장뿐 아니 라 중국 현지의 소림사 무술관에서도 한동작에 얼마? 하는 식으로 수련생들을 모집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경우는 18기의 기본기가 되어있는 고단자에 한하여서이지만 ㅡ 이 수련기를 계속읽어보는 독자들 중에는 어떻게 한 도장에서 저렇게 많은 유파의 권법을 배울수 있는가 의 아했던 적이 있다면 이제 그 이유를 이해할수 있었을 것이다.
동해천에게 팔괘장을 배운 사람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윤복(尹福)과 정정화(鄭貞華) 이 두사람이 가장 뛰어 났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정정화의 팔괘장은 적과 맞섰을때 적의 주위를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적을 어리둥절 만들며 눈 마져 속여 앞인가 하면 뒤이고 오른쪽인가 하면 왼쪽에서 동에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이었다. 이것에 비해 윤복은 적과 맞보고 일촉즉발의 거리로 들어가 순간적으로 적을 쓰러뜨리고 말아 쓰러진자도 보 고있는 자도 어째서 쓰러졌는지 몰랐다고 한다. 정정화는 1900년 중국을 휩쓴 의화단 사건에 보복하기위해 영,독.일,순찰대를 습격하다가 사살되고 말았다. 윤복은 동해천의 후임으로 청나라 조정으로 들어갔고 궁보전(宮寶田),마귀(馬貴)등에게 팔괘장을 전했다. 궁보전은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에게 팔괘장을 가르치다가 청이 멸망하자 고향인 산동성에 들어가 은거했 는데 나이 70이 넘어서도 그 전신공(轉身功)은 비상하여 순식간에 강을 건너뛰어 서 있던가 혹은 높은곳에 나 타나던가 했다고 한다. 궁보전의 팔괘장은 유운초, 궁보제 등의 전수자로 이어졌는데 그중 60년대부터 중국무술계를 주릅잡던 4대명 인 노수전(盧水田) 노사(老師)는 우리나라에 건너와 인천에 내가권 팔괘장도장을 개관하여 한국인 제자를 길 렀다. 90년도초 우슈협회 회원들과 인천의 중구 경동에 있는 팔괘장 도장을 견학했을때 그에게 직접 의발을 전수받 았다는 중년의 관장(이름은 기억이 되지 않음)은 노수전 노사의 기예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노 노사님은 70년대만 해도 이미 나이 칠순이 가까워 제자들 앞에서 시연을 하시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어요. 가끔 제자들이 연무하는 곁에와서 툭 쳐서 자세를 고쳐 주시곤 했는데...그러나 이따금 교정동작을 보이실땐 전광석화같은 장영(掌影)이 눈앞을 흐트렸지요 칠십노구가 그렇게 민첩할수가...'
 동해천 종사(宗師)가 베이징에서 팔괘장을 전파하던 1850년 중국에 는 빠가장 열풍이 불었다. 무림야사에 따르면 동해천은 자신이 창안한 팔괘장을 들고나와 당대 최고 무술가라는 천하무적 태극권(太極拳)의 명인 양노선과 교수하 여 우위를 점했고 형의권(形意拳)의 달인 곽운심과는 꼬박 사흘간 혈투를 벌려 그 우열을 가리지 못하였다 하니 이후 세인들이 팔괘장 을 일컬어 「팔괘장찬(八卦掌讚)신기막측(神技莫測)」이라 칭찬하였다.
장(掌)이란 참으로 특이한 것이다. 능숙하게 숙달된다면 권은 쓸 필요가 없게 된다. 창니보로 적을 교란시킨 다음 은보(隱步)로 접근한후 팔장을 쳐 낼수만 있다면 천하에 당할자를 가히 찾아보 기 힘들것이다. 단환장의 엽저장화(葉低藏花)는 비록 그 초식이 단순하나 두손으로 아래위로 펼치니 마치 떨어지는 낙엽에 꽃이 감추어진듯 그 진퇴를 귀신도 알아낼수 없고 연환장의 회중포�(懷中胞月)은 부드러운 손바닥안에 솜뭉 치를 품은듯 뻗어내는 장심(掌心)은 가공할 근력이 숨겨져 있다.
고급무술인 만큼 그 정수를 깨닫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는 빠가장 ㅡ 훌륭한 스승의 지도와 체계적인 수련으로 보법과 신법,장법이 흐트러짐없이 어우러져야 신묘한 위력이 나온 다는 이 권법은 그러나 ,워낙 생소한데다가 수련과정이 어려워 근래에는 이를 배우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 그 진가가 반감됨이 안타깝다 평생을 팔괘장 하나를 수련해온 그 관장의 탄식이 아직도 귀에 남아있다. "노수전 노사님이 살아 계실때는 빠가장이 굉장한 인기를 얻었지요.인천에서는 빠가장이 중국무술의 전부라 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근자에는 팔괘장을 배우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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