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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서울에 상경 하자마자 제일 먼저 찾은것이 18기도장이였다. 청량리 로타리에 자리잡은 강덕관(講德館)은 소림권 도장으로 수십년을 한곳에서 운영 하며 많은 수련생들을 배출했다. 위치가 철도와 연결된 곳이여서 지방에서 올라오는수련생도 많다고 한다. 내가 처음 강덕관을 찾았을때는 소림권 위주였는데 언젠가 그곳을 지나다 보니 태극권 (太極拳)도 함께 수련과목에 들어 있었다. 하기야 요즈음 많은 18기무술관에서 태극권을 지도하고 있는 추세이니까.
영등포 시장로타리에는 그당시 상가 건물이 들어서는 신축공사가 한창이였다. 영등포역에서 10분거리에 있던 18기도장은 아직도 공사중인 건물의 지하를 빌어 개관한 곳이 였는데 사범은 중년을 넘긴 중후한 모습의 무인(武人)으로서 처음 찾아간 내게 친절 하게 안내해 주었고 실제로 관원들이 수련하는 광경을 1시간여 동안이나 견학케 해 주었다. 도장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88올림픽을 기점으로 대한우슈협회(大韓武術協會)가 창립 되고 그 협회명단에 있는 영등포 문래동의 경무관(敬武館)이 40년 전통이라는 사실을 보면 그때 내가 찾아간 곳이 바로 이 도장의 전신이 아닌듯 싶다.
대학가인 신촌 로타리에는 유독 많은 태권도와 합기도장이 있었는데 버스정류장 바로 근처 건물 3층에 있던 팔괘장(八卦掌)도장은 그당시 서울의 많은 18기도장들이 소림권법을 주로 가르친데 비해 비교적 낯설은 팔괘장법을 지도 하는 곳이였다. 모든 수련생들이 가운데 있는 사범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면서 호흡법(呼吸法)과 보법(步法)을 익히고 있는 광경이 무척 인상적이였다. 나중 그것이 모든 팔괘장 투로(套路)의 기본보법인 창니보(蹌泥步) 인것을 알았다.
성수동에 있는 한화국술당랑총관(韓華國術螳螂總館)은 1960년도 초에 개관된 것으로 그 역사가 길다. 내가 찾아 갔을때에는 이미 10 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련생들을 길러내어 많은 제자들이 배출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규칙도 까다로워 다른 도장과는 달리 연무광경 을 견학 하는것을 썩 내켜하지 않는 기색이였다. 당랑권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귀 아프도록 들었기에 그래선지 소림권보다는 아무래도 호기 심이 덜 작용한것이 사실이다.
 (도장의 구조는 수련종목에 따른 차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내가 보아온 다른 무술도장 과는 판이했다. 정면에 보이는「물경소기(勿經少技)」라는 글은 '작은 동작이라도 중요하지 않은것이 없다'는 소초가식(小招佳式)의 가르침이다. 봉술(棒術)은 검술,도술.창술 등과 쌍벽을 이루는 무기술이다. 사진은 원앙장봉(鴛鴦長棒) 투로중 제슬하점곤(提膝下漸棍) 동작이다)
******************************************** 대한십팔기협회(大韓十八技協會) 청죽관(靑竹館) ******************************************** 청죽도장은 신당동 사거리 바로 우측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날은 토요일 오후 시간이였는데 도장문을 들어서자 붉은 도복을 입은 관원이 친절하게 관장실로 안내했다. 최00 관장님은 30대 후반으로 건장한 체격에 무인다운 깊이있는 인상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서 최사부님의 실명을 밝히지 않는것은 유단자모임에서 표시한 본인의 뜻에 기인함) 그의 사부는 대만에서 건너온 중국인으로서 소림권과 당랑권의 달인이며 한국에 여러명의 적전제자(嫡傳第子)가 있는데 그중 최관장을 가장 아끼는 제자중 하나라고 인정하고 있다 고 했다. 100여평의 넓은 연무장에는 중앙에 태극기와 대만기가 나란히 걸려있고 붉은 벽면에는 검(劍),장도(長刀),쌍도(雙刀),단도(短刀),구(鉤),삼절곤(三節棍),칠절편(七節鞭),환(環)등 이 전시되었으며 그 양옆의 가대(架臺)에는 장봉(長棒),단봉(短棒),창(槍),청룡도(靑龍刀) 등이 수십자루 가즈런히 꽂혀 있었다. 도장내에는 붉은색도복과 검은색도복을 입은 이십여명의 수련생이 한창 기본동작을 연마 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구령을 부치는 사범의 소리만 들릴뿐 기침소리 하나없이 고요 했다. 붉은도복을 입은 관원은 유단자이고 호흡을 통하여 내공을 단련하느라 입을 크게 벌 리지 않은채 연공(鍊功)하고 있다는 관장님의 설명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 졌다.
 (소림홍권은 소홍권(小紅拳)과 대홍권(大紅拳)이 있으며 숭산 소림사 말기의 무승(武僧) 석득근 대사가 전수한 것이라 한다. 홍권의 기법은 실전(實戰) 위주이므로 동작이 비교적 작은 소궁보(小弓步:小登山式),소마보(小馬步: 四平馬)를 많이 사용한다. 사진의 부보안장(仆步按掌) 초식은 먼저 도약하여 이기각(二起脚)이나 선풍퇴(旋風腿)로 적을 공격한후 착지하여 몸을 낯우고 좌장으로 주먹이나 발공격을 눌러 방어하는 것으로 비약(飛躍)과 안착(安着)의 급격한 신법(身法) 변화를 익혀야 한다)
 ( 포튀쉬(仆腿式 부퇴식)은 방어술 자세다.뒷다리를 급격히 낯우고 앞발을 가벼히 땅에 붙여 적의 퇴격(腿擊)을 피한다. 남파소림(南派少林)에서는 사하식(斜下式) 이라고도 부르며 특히 오형권(五形拳)중 사형권(蛇形拳)의 백사복지식(白蛇伏地式)과 유사한 초식이다)
다음날 오후 6시경 옛날 도복을 챙겨들고 다시 도장을 찾았다. 도복에 매인 검은띠를 보고 관장이 내 운동경력을 물었다. 그리고는 발차기 몇차례와 배운 권법중 가장 잘할수 있는 형을 뛰어보라고 했다. 일종의 실력 테스트였다. 그때 나는 이봉철 명인이 떠나고 난후 마지막으로 당시 18계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많은 이 들에게 알려져 있는 김상인 사범에게 수개월 동안 단권(短拳)과 장권(長拳)형을 배웠었다. 그 인연은, 우연히 전에 다니던 야와라 도장을 찾았을때 처음에는 야와라만 가르치던 도장 에 새로 18계부를 설치하고 그 지도를 김사범이 맡았던 것인데 관장으로부터 내 이야기를 듣고 특별지도를 해준 것이다. 아마 18계를 야외가 아닌 도장에서 가르친것은 이것이 처음이였을 터인데 18계간판이 아닌 야와라 도장의 간판이여서 조금 아쉬운 점이 없진 않다. 김사범에게 지도 받던 얼마후(아마 졸업때 즈음인것 같다) 시민관 근처에 간판은 달지 않았 지만 18계를 가르치는 도장이 생겨나 김사범의 심부름으로 그곳 사범을 두어차례 만난적도 있는데 그후 몇개월이 되지않아 흐지부지 문을 닫고 말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시연(試演)한 권법은 김사범에게 배운 장권 이였다.그가 가르켜준 장권 세줄기(장권형을 그냥 '줄기'라고만 불렀다)는 권법명칭을 알려 주지 않아 무슨 형인지 모르겠으나 지금 생각하 면 상당한 수준의 투로(套路)였음은 분명했던것 같다. 나의 시범을 본 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반부 는 말고 개인지도나 특별부(特別部) 지도를 받으 라고 권유했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기본 공부(功夫)는 되어있다 고 판단한 모양이였다.특별부와 개인지도는 사범 이아닌 관장이 직접 지도했다.
일권(一拳)을 쳐내고 일각(一脚)을 뻗는 단순한 동작에도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응용법이 스며있는 오묘무쌍한 무예 18기- 나의 18기 무술 수련은 이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첫번째 배운 권법이 이름이 자자한「소호연(少虎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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