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크랩] 중국 내 교민에게 위험이 닥칠 수 있다

칼의 춤 2008. 4. 30. 07:14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가 서울을 지나간 이후, 중국인들이 우리나라 시위대를 폭행한 사건으로 분노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시위대는 집시법 절차에 맞게 행동했는데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상경한 중국유학생들의 난동에 피해를 입게된 것이 알려지자 여론의 분노는 더욱 치솟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 일본의 한 언론에 의해 중국 영사관에서 상경 유학생들에게 경비를 대준 것으로 밝혀져 분노는 오늘을 기점으로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의 흐름이 이러한 양상으로 가다간 자칫 중국 내 우리 교민들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일본에서 날아온 한 오보의 파장

 

어제 저녁 그리고 오늘 아침엔 중국 유학생들의 국내 폭력사태에 기름을 붓는 하나의 소식이 더해졌는데, 바로 '국내에서 중국인에게 한국인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어제, 일본 FNN 뉴스의 '한국인, 중국인에게 피살' 보도 영상>

 

이 소식을 최초로 타전한 것은 국내의 언론이 아닌 일본의 한 언론이었다. 이러한 소식을 우리나라 네티즌이 접한 후 급속도로 각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 이 소식이 알려지고, 급기야는 꽤나 이름을 날린다는 유명 블로거들까지 합세하여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의혹도 제기 되었다. '일본 언론도 보도하는데에 반해 우리나라 언론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보도를 통제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이 사건은 며칠 전 사건으로 가해자 및 피해자 모두 중국동포 출신으로 가해자는 중국 국적의 중국동포 피해자는 한국 국적의 중국동포로 밝혀졌다. 또한 국내 언론이 이미 보도를 하였고, 우발적인 사건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현재 중국인들의 폭력사태 후 국내의 기류가 미묘한 시점에 일본의 방송이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 보도한 것이다.

 

'호떡 집에 불냈던' 우리 조상들

 

'호떡 집에 불냈던' 우리 조상들이란 제목은 현재의 사태와 도무지 연관성이 없을 듯 하다. 그러나 '호떡집에 불난다'라는 말의 유래를 안다면 아마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호떡집에 불난다'라는 말은 1931년 7월에 있었던 한 사건 때문에 생겼다.

 

1931년 7월 2일과 7월 3일 조선일보(방응모 씨가 사들이기 이전의)는 연속으로 호외를 발행했다.

-만주 만보산에서 조선 농민들이 판 수로를 중국관민들이 합세하여 다시 매립하였다. 수로 파괴 이후 중국관민 800여 명과 조선농민 200여명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다수의 조선농민이 '살상'되었다.-

중국인들로 인해 동포가 살해되었다는 호외를 접하자 한인들의 반중감정은 고조되어 평양, 서울, 인천은 물론 조선 각지의 중국인들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사태는 인천에서 시작되었다.

 

<1931년 7월 3일 조선일보 호외와 소요로 폐허가 된 당시의 평양 중국인 거리>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차이나타운을 조성하고 있었던 인천에서 제일 먼저 중국인들의 조선 진출의 상징인 호떡집에 돌이 날아들었다. 이어 중국인들이 구타당했고, 이는 경기도 전역은 물론 평양까지 확산되었다. 1931년 7월 3일부터 7월 9일까지 조선 전역의 대부분의 호떡집이 불에 탔으며, 중국인들 또한 조선 전역에서 습격을 당했다. 당시 중국 측은 이 결과로 '142명이 사망하고, 546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으며, 조선총독부는 '100여명 사망, 190명 부상'으로 발표했다.

 

이후에 사태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중국 언론의 보도를 빌리자면, '5일 오후 정세가 누그러졌으나 민심은 흉흉했다. 귀국을 희망하는 전국 각지 화교 1만여 명이 인천항에서 이통환(利通丸) 편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당시의 사태는 엄청나서 만해 한용운을 비롯한 민족 지도자들이 직접 나서 군중을 달래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같은 사태는 당시 식민지 조선의 우리 조상들의 가슴에 있던 일제 식민치하의 울분이 조선일보의 호외를 기점으로 터졌던 비극이었다. 그러나 구실을 제공했던 조선일보의 호외는 '오보'였다.

 

1931년 당시 일제는 만주 진출을 노리고 있었고, 만주에 있던 한인 또한 일제로 볼 땐 국적이 '일본인'이었으므로 술책을 부린 것이었다. 총독부는 일부러 한인들의 소요를 막지 않았었다. 게다가 당시 호외 기사의 타전이 만주 만보산이 아닌 장춘에서 이루어졌고, 당시 특파원 또한 일본영사관에서 제공받은 오보를 그대로 타전했다고 인정했다. 결국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위한 술수에 놀아난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호떡 집에 불나듯' 중국 내 우리 교민들이 위험할 수 있다

 

현재 미온적인 정부의 반응과 들끓는 여론은 1931년 당시와 상당히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1931년 '호떡집에 불났던' 당시와는 달리 현재의 상황에서는 중국 내 우리 교민들이 위험할 수 있다.

 

현재 정부의 폭행 가담 중국인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는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될까 두려워서'라는 여론의 인식이 팽배하다. 이에 현재 여론은 대단히 날이 서있고, 정부의 대책이 계속 미온적이라면 곧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결과로 현재 각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폭행 중국인들의 주모자 명단'이라는 게시글과 함께 이들에 대한 보복을 명시하는 지경에 있다.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있는 '폭력시위주모자 명단' 게시글>

 

이러한 여론의 결과로 단 한 명의 중국인이 우리 국민에게 보복폭행을 당할 경우, 그리고 이것이 국내 언론에 보도된 후 중국의 언론으로 보도가 되고 더불어 중국 네티즌의 여론이 들끓게 만든다면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민들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현재 중국인들의 시위 문화와 타국 또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 문화는 쉽게 표현하자면 굉장히 질이 낮다. 오랜 세월 일당독재국가에 살았고 또한 현재도 그러한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민주적 시위와 타인 이해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의 성화 봉송 당시의 중국인들의 폭행 사건도 그러한 바탕에서 일어났고, 또한 중국 내의 여러 소요 사건들을 보아도 쉽게 알 수가 있다. 게다가 중국은 본인들의 실수와 실책에 대해서는 엄청난 언론 통제를 실시한다. 중국 언론들이 일제히 '서울의 성화 봉송이 평화적으로 끝났다'라고 보도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2005년 중국에서 반일감정이 고조된 당시, 일본차를 탄다며 같은 중국인을 습격한 장면>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인들은 현재, 성화 봉송 당시 다수의 중국유학생들이 서울에서 우리 국민을 폭행한 만행을 알리가 만무한 반면에 우리 국민이 우리나라에서 중국인을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난다면 전후 사정을 모르는 중국 내 중국인들은 올림픽으로 인해 가뜩이나 고조된 자부심 과잉과 더불어 '가만있는 우리를 왜 건드냐'며 중국 내 우리 교민들을 습격하거나 괴롭힐 가능성이 다분하다. 차가 일제라며 자국민마저 습격하는 중국인들이다. 만약 사태가 이대로 진행되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정부가 폭행 중국인들을 속히 법대로 처벌하는 것만이 사태 진정의 방법

 

그렇다고 폭력에 가담한 중국인을 마냥 건드리지 말자는 것이 글의 요지가 아니다. 사태의 양상이 우리 국민의 중국인 보복폭행으로 간다면 중국 내 우리 교민들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럼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국민의 자존심과 또한 정의를 살리는 것인가. 바로 폭력에 가담한 중국유학생들을 모두 잡아들여 법대로 처벌하는 것이다.

 

현재 '성화 봉송 사태'에 대한 여론이 극에 달하고, 네티즌 일부가 중국인에 대한 보복폭행을 주장하는 것은 정부의 대처가 외교적인 문제를 겁내어 너무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부의 대처는 근시안적인 안목에서 나온 것이며, 더불어 우리 국민을 무시한 것에 다름 아니다.

 

만약 정부가 처음부터 우리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한 중국인들을 법대로 모두 처벌하였다면 여론이 현재와 같이 형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계속 현재와 같은 미온적 입장을 고수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중국인에 대한 보복폭행과 더불어 중국 내에 우리 교민들이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가상의 시나리오는 더이상 가상일 수가 없게 된다. 정부는 부디 현명한 처신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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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후회하지 않도록-
글쓴이 : 타리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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