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설

[스크랩] 두보의 등악양루

칼의 춤 2008. 7. 31. 14:11

     등악양루(登岳陽樓)

 

昔聞洞庭水    석문동정수
今上岳陽樓    금상악양루
吳楚東南坼    오초동남절
乾坤日夜浮    건곤일야부
親朋無一字    친붕무일자

老病有孤舟    노병유고주
戎馬關山北    융마관산북
憑軒涕泗流    빙헌체사류


옛부터 동정호 이야기를 들어왔더니
오늘 비로소 그 악양루에 오르네
오와 초는 동쪽과 남쪽으로 갈라서 있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부옇게 떠 있네
가족과 벗에게서는 한 자 소식도 없는데
늙고 병든 몸이 쪽배에 외로이 있네 
관산 북쪽에는 아직도 싸움이 끝나지 않았는데  
난간에 기대어 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악양루>

 

두보는 자(字)가 子美이다. 호북성 양양현 사람이나 후에 하남성 공현으로 이주하였다.

杜甫는 성당 때 사람이다. 천주교 신자라는 뜻이 아니고 당나라는 크게 초당, 성당, 중당, 만당

이렇게 네 시기로 나뉘는데 初唐(618~)은 당 고조 무덕원년부터 예종 태극원년 까지 약 95년

을 말하며 盛唐(713~)은 현종 개원원년부터 대종 영태원년까지 약 53년간, 中唐(766~)은

대종 대력원년부터 경종 보력2년(약 61년간), 晩唐(807~905)은 문종 태화원년부터 소선제

천우2년까지(약 80년)를 말한다. 우리들이 흔히 잘알고 있는 이태백이니 두보니 왕유, 맹호연

이런 사람들이 모두 성당 때 사람들이다. 주옥 같은 작품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오고 이름난

시인 묵객이 허다하였기에 그만치 성당시기에는 중국 역사상 가장 문학이 융성한 시기로 아직

도 그 시기의 융성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한 시기의 가장 뛰어난 두 사람이

바로 이백과 두보이다. 이백은 詩仙으로 두보는 詩聖으로 기리만큼 이 두 사람은 중국 문학의

가장 높이 선 콧마루와 같은 위치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두보는 그의 조부는 측천무후 때 시인 두심언이고 아버지 두한은 봉천 현령을 지낸 지방관이었

다. 안록산의 난 때 숙종에게 찾아가 잠시 좌습유라는 벼슬을 하였으며 성도, 기주 등의 지방을

유량하며 다시 고향에 돌아가려다 대력 5년(770년) 59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작품집으로는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있다.

출처 : 소을소리
글쓴이 : 유진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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