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황학루(최호)
黃鶴樓 황학루
崔顥(최호)
昔人已乘黃鶴去(석인이승황학거) 옛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가고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땅에는 쓸쓸히 황학루만 남았구나.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부반) 한번 간 황학은 다시 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 흰 구름만 천 년을 유유히 떠 있네.
晴川歷歷漢陽樹(청천역력한양수) 맑은 냇가에는 한양의 나무그늘 무성하고
芳草萋萋鸚鵡洲(방초처처앵무주) 앵무주 모래톱에는 봄풀들만 우거졌네.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해는 저무는데 고향이 어디던가
煙波江上使人愁(연파강상사인수) 강 위의 물안개에 시름만 깊어지네.
번역 2
옛 사람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고
이곳엔 쓸쓸히 황학루만 남았네
황학은 한번 떠나 돌아오지 않고
빈 하늘엔 흰 구름만 유유히 떠도는구나.
맑은 냇물 사이로 한양의 나무만 무성하고
앵무주에는 향기로운 봄풀만 우거졌구나
날은 저무는데 내 고향 어귀는 어디쯤인가
강 위에 안개는 나를 수심에 잠기게 한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최호
시대 : 당나라(704-754)
갈래 : 칠언율시
성격 : 서정시, 서사시,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
이해와 감상
먼 옛날 한 여인이 경치 좋은 이곳에서 주점을 열었단다.
한 노인이 돈도 없이 여러 달 술을 마셨고 후덕한 주모는 말없이 잘 대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귤껍질을 가지고 벽에 누런 학을 그려놓고 떠났다.
그 후로 술자리가 벌어질 때마다 벽에 그려진 학이 춤을 추어서 손님이 모여들었다.
10년이 지나 큰돈을 벌은 후에 노인이 다시 나타나서 피리를 불며 자기가 그렸던 황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노인은 자안(子安)이라는 신선이었다고 전한다.
큰돈을 번 여인은 신선을 기려 그 자리에 정자를 짓고 황학정이라 했다는데,
이러한 고사와 경치가 어우러져 많은 시인들을 불렀고 그 중에서도 최호의 "황학루"라는 시가 단연 백미라고 한다.
황학루를 소재로 한 이 시는 칠언율시로서는 천고의 명작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시다.
작가는 우연히 신선이 황학을 타고 갔다는 황학루에 올랐다.
그러나 그 곳은 황학과 신선은 없고. 그들이 놀았다는 황학루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푸른 하늘엔 흰 구름만 천년동안 떠다니고, 황학루 주변엔 봄을 맞아 옛날과 다름없이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향기를 품고 있었다.
정말 신선이 황학을 타고와 놀고 갈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황학루 아래를 흐르는 강물에 급강하한 기온의 차이로 안개가 짙게 일어난 것이다.
그 안개가 작가를 황학루를 소재로 한 역사적 회상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고향을 떠나 타향을 떠도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자신의 방랑이 근심스러운 것이다.
평범한 인간의 꿈이 실현되었던 전설적 역사 공간에서 느끼는 작가의 현실적인 좌절이 선명하게 표현된 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유서 깊은 역사적인 장소로 인하여 더욱 깊게 표현되었다.
그래서 수 많은 시인들이 이 작품을 흉내 내어 시를 지었지만 이 작품을 능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이백(李白)도 "등금릉봉황대"라는 작품을 지었으나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 경물에 가장 적합한 표현을 최호가 선점한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인은 옛일을 회고하고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바라보면서 "날은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냐" 고 향수에 젖은 나그네의 시름을 들어내고 있다.
그 후에 이백이 이곳에 들러 최호의 시를 보고는 천하명시라고 격찬하고 이 보다 더 좋은 시는 지을 수 없다 하여 붓을 꺾었단다.
그래서 황학루의 최호시비(崔顥詩碑) 옆에는 이백이 붓을 꺾었다는 각필정(擱筆亭)이 서 있고,
그래도 그 유명한 황학루에 시 한수 남기지 못한 것이 서운했던지 후일 다시 와서 앵무주라는 시 한 수를 읊고 붓을 씻었다하여
세필지(洗筆池)라는 연못이 있다.
최호(704-754) 당(唐)대 하남성 개봉 사람으로 개원 11년에 진사에 급제하였고, 천보 년간에 상서사훈원외랑을 지냈다.
젊어서는 도박을 즐겼고,주색에 깊이 빠졌으며 재주가 뛰어났으나 행동이 경박하여 젊어서 쓴 시는 시의가 부염하였지만,
만년에는 수양이 깊어지고 시체(詩體)도 변하여 풍골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황학루는 무창 장강기슭의 사산(蛇山) 위에 세워진 5층 누각이다.
"천고의 명승", "천하의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황학루는 호남성(湖南省) 악양루(岳陽樓)와 강서성(江西省) 등왕각과 함께
강남 3대 명루에 속한다.
무창의 황학바위에 세워졌다하여 '황학루'라 불리는 곳이다.
황학루는 군사 전략상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훗날 약 212명의 수 많은 문인들이 약 339개의 시를 지어
황학루의 경치를 찬양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중 당나라 시인 최호(崔顥)의 '황학루'와 이태백의 '황학루에서, 맹호연(孟浩然)을 광육(廣陸)으로 보낸다'
라는 시가 유명하다.
중국 호북성(湖北省)의 성도(省都)요 양자강과 그 지류인 한수(漢水)가 만나는 곳에 武漢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무한삼진(武漢三鎭; 武昌 漢口 漢陽)으로 불리던 군사요충이면서 삼대명루(三大名樓) 중의 하나라는
황학루(黃鶴樓)가 있는 명승지이다.
황학루는 원래 3층 누각이던 것을 근래에 중건하면서 51m 높이의 5층 누각이 되었다고 한다.
무창의 황학루 전경
< 황학루 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