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무협용어 소사전- 구파일방(九派一幇)/문파/세가
정파 무림의 대표격인 아홉개의 거대 문파와 하나의 방회를 말한다. 구파 가운데 대개 소림, 무당, 아미, 곤륜, 화산, 점창의 여섯개 문파는 거의 예외없이 속하고, 청성, 종남, 공동, 장백, 형산 등의 문파는 작가의 취향에 따라 등장한다. 일방은 개방이다.
■ 소림사(少林寺): 구대문파의 태산북두인 불교 문파. 중국 선종, 특히 임제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 소림사의 내력- 위치 소림사는 하남성 등봉현에 있는 숭산의 소실봉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소림사'라는 이름 자체가 '소실봉의 북쪽 숲 속에 있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창건- 흔히 소림사는 달마대사가 창건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사실은 약 천 오백년 전에 북위의 효문제 때(495년) 인도에서 온 발타선사가 창건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발타선사는 여섯 명의 친구와 함께 출가했는데 친구들은 모두 성불을 하고 발타만 부처가 되지 못하였다. 그래도 낙망하지 않고 구도의 길을 떠난 발타는 마지막으로 중국에 이르러 효문제를 만나게 되고, 효문제의 명으로 소림사를 세웠다. 그는 삼십 년간 소림사에 머물다가 떠났다고 한다. 이 소림사의 창건에 대한 역사는 <위서석노지>, <배최비>, <경덕전등록> 등에 기록되어 있다.
혜가- 중국 선종 불교의 시조가 되는 달마의 법통은 제이조인 혜가에게로 이어진다. 혜가는 달마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여 달마가 거처하는 달마정 밖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이때 마침 눈이 내려 무릎까지 쌓였다. 달마는 혜가에게, '흰 눈이 붉은 색으로 변하면 제자로 받아 들이겠다.'라고 그의 신심을 시험하였다. 그러자 혜가는 스스로 왼팔을 잘라 피를 흘리니 흰 눈은 금새 붉은 색으로 물들고, 달마는 그를 제자로 거두었다. 달마정이 입설정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눈이 무릎까지 쌓이도록 서 있었다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입설정 앞 오른쪽에 혜가가 팔을 자른 자리에는 '입설정'이라고 쓴 자그마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후 소림의 제자들은 한 손밖에 쓸 수 없는 혜가를 기리기 위해 한 손만을 바로 세우는 독특한 예법을 행하며, 가사 한 쪽 자락으로 왼쪽을 가리는 옷차림을 즐겨한다. 무협영화를 즐겨보는 독자라면 몇 번씩이나 보아왔던 소림고수들의 특이한 인사자세와 복장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기 536년 어느 날, 달마는 제자들을 불러모아 그들로 하여금 각자 깨달음의 경지에 대해 말해 보도록 하였다. 도부라는 제자가 먼저 말했다. "저의 소견으로는 우리는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그렇다고 문자를 버리지도 말아, 다만 문자를 일종의 구도하는 도구로서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달마는 이렇게 핀잔을 주었다. "너는 겨우 나의 껍질만 얻었구나." 다음은 총지라는 비구니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아난타가 아크쇼비아(석가 이전의 부처)의 불국토를 본 것과 같습니다. 한 번 보고는 다시 못보았으니까요." 달마의 대답은 이러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이라는 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땅(地), 물(水), 불(火), 바람(風)의 사대는 본래 공허한 것이며 눈(眼), 코(鼻), 귀(耳), 혀(舌), 몸(身)의 오온은 모두 실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선 자리에서 보면 불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 달마는, "너는 겨우 나의 뼈를 얻었구나." 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혜가가 절을 하고는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달마는 혜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야말로 나의 진수를 얻었다." 이렇게 해서 혜가는 선종의 이조가 되었던 것이다.
■ 참고 : 혜능 , 달마
2. 소림사의 구조- 고루는 원나라 때의 초조암이며, 본전은 송나라 때의 목조건축이다. 본전의 내부에는 인왕, 용 등을 부각한 석주가 있다. 그 밖에 다수의 당송 이후의 석비, 동위의 삼존불, 북제의 조상 등이 있다. 본전의 앞에는 소림사의 승려들이 권법을 수련했다는 상석이 있고, 경내의 깊숙한 곳에는 역대 고승들의 묘와 석탑이 숲의 나무처럼 서 있는 탑림이 있다. 이 외에도 각종 무공비급과 불교의 경전들을 보관한 장경각, 소림사를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접대하는 지객당, 소림사의 노승들이 보다 높은 불법을 수도하는 계지원의 양심당, 소림의 제자들의 규율을 감독하는 계율원, 소림사의 장문인이 기거하는 방장실, 방장실을 앞뒤로 에워싸고 있는 팔대호원, 영화로도 익히 알려진 소림고수들의 무공연습실인 소림삼십육방, 소림의 절정고수들인 십팔나한들의 거처인 나한전 등이 많이 알려진 장소들이다. 이외에도 작가, 혹은 작품에 따라 선대 고승들의 유골과 유품을 모아 놓은 조사전, 장로원 격인 장생전, 계율을 어긴 승려들을 가두는 참회동 등이 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3. 소림사의 조직- 소림사의 장문인은 방장이라고 부른다. 방장이라는 칭호는 원래 천축의 유마거사가 처음 호칭한 말로, 불법을 많이 닦은 고승들이 주로 사방 한 장(=3미터) 정도 되는 좁은 밀실에서 도를 수련한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대체로 방장 밑에는 그를 호위하는 팔대호원이 있는데 그들중 우두머리는 감원이라고 한다. 사대금강이나 십팔나한은 자주 등장하는 것이고, 그들 외에 십계십승이 있다. 십계십승이란 불교에서 승려들이 지켜야할 열 가지 계율을 관리하는 열 명의 승려들을 말하는데 이들의 절 안에서의 위치는 상당히 높았다. 십계란 살계, 투계, 망어계, 기어계, 음계, 주계, 악구계, 탐계, 진욕계, 치계의 열 가지로, 이를 주관하는 승려들을 각기 살계승, 투계승..... 등의 명칭으로 불렀다.
4. 소림사의 배분 - 소림사의 배분은 엄격해서 윗 배분의 인물들에게는 절대 복종하였다. 명나라부터 청나라 순치년간까지의 소림승려들은 대부분이 현자 배를 썼다는 기록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고 무협소설에서는 각기 다른 배분이 나오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느 자 배분이 우선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대체로 무협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소림사의 배분을 가나다 순으로 기술하면 아래와 같다. - 각, 계, 공, 광, 굉, 담, 대, 덕, 도, 료, 명, 묘, 무, 방, 백, 범, 법, 보, 불, 심, 연, 영, 오, 운, 원, 언, 이, 일, 자, 정, 종, 지, 천, 해, 현, 혜, 홍.
5. 영약 및 신물 - 소림사의 영약으로는 무림제일의 성약이라고 까지 불리우는 '대환단'과, 그보다는 조금 떨어지지만 역시 놀라운 성능을 지닌 '소환단'이 있다. 소림장문인의 신물은 녹옥으로 만든 지팡이인데 흔히 '녹옥불장'이라고 한다.
엄영춘 - 영춘권을 만든 여성. 영춘권은 일거일동에 빈틈이 없고 자신의 권내를 침범하는 자는 예민한 반사신경과 탄력을 사용하여 최소의 움직임으로 타도한다고 하는 강한 권법이다. 반드시 목인상을 두고 좁은 간격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연습을 하며 방수, 탄수, 복수의 삼수로 그 유명한 채이불권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진형공(1806-1875) - 진형공은 채이불권의 창시자이다. 그는 광동성 신회현 사람으로 어릴때부터 천부적인 재질을 발휘하여 17세때 최초의 스승인 같은 고향의 숙부 진원호에게 오의를 전부 전해받은 다음 그의 소개로 이우산(정확히는 모르지만 다리를 엄청나게 잘 쓰는 고수였다고 함)에게 배웠는데 여기서도 겨우 4년만에 모든 것을 체득하고 다시 이우산의 소개장을 가지고 나부산에 은거하는 소림고승 채복선사를 찾아가 8년동안 권법과 불교 철리를 교육받고 귀향한 후 2년동안 권법을 정리하여 드디어 청나라 도광16년(1836)에 채이불파를 창시했다.
항림 - 청나라 도광년간에 소림사에 들어가 깨우침을 얻은 인물. 민국9년(1920)에 도적떼가 천지를 누비자 소림보위단을 조직하여 소림사 서쪽에서 도적떼를 격퇴시켰으며 이란 칭호를 받았다. 바로 이 인물의 제자가 금나한 묘흥이고 묘흥의 제자가 소광, 그리고 그의 제자가 바로 현재의 소림 장문인 덕선이다. 현기화상 - 명나라때 소림사의 권법을 전한 의 주인. 는 모두 실존하는 것이며 현기화상의 절학을 적은 것이라 한다. 현기화상의 권법은 이후 진송천, 장명악, 장공소를 거쳐 청나라 건륭제때 을 직접 쓴 조환두에게로 계승되었다.
이소룡 - 이소룡은 절권도라는 걸 창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영춘권을 배웠습니다. 절권도는 그 후에 그가 잡다한 무공을 섭렵한 후 나름대로의 무공을 정립화시킨 것이다.
소림 72예 - 소림파의 기공법은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가 전한 것이라고 하지만, 무공을 보는 한도에서는 무당공 등의 중국 본래의 것이라고 해도 조금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소림기공에서는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로 촛불을 끄는 일지선 이라든가, 깊은 우물의 수면을 로 쳐서 물결이 일게하는 백보신권이라는 유명한 단련법이 있는데, 합계가 72가지이므로 72예라고 불리워진다.
참고 사항 1. 달마대사가 과연 소림에서 면벽 구년을 했는가, 그리고 그동안에 과 을 만든 것이 사실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후세의 사가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일단 달마대사가 527년에 중국으로 와서 536년에 사망을 했다는게 중론입니다. 물론 게중에는 528년에 죽었다는 설도 있지만 거의는 전자의 의견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536년에 죽었다면 527년부터 536년까지의 9년간 인간의 깨달음의 벽, 즉 깨우침을 전했다는 말이 성립되지요. 물론 이 기간동안 내내 동굴속에 쳐박혀 면벽을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지만 일단 소림에 9년동안 머무르면서 선을 닦았다는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하지만 그 9년동안 과 을 저술했는지는 여전한 의문입니다. 달마대사가 소림 무술을 창시했다는 주장은 오직 의 머리말을 쓴 이정에 의해 뒷받침될 뿐입니다. 이정은 당나라 삼원 사람으로 자는 약사이고, 시호는 경무입니다. 서사에 능통하고, 벼슬은 형부상서와 서해도 행군대총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그의 논병을 수록하여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달마대사가 전했다는 의 서문에 이정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당나라 정관 2년(서기 628년)의 일입니다. 그 책에는, - 이 책은 달마대사의 유작이며 소림사 권법의 원전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00년 이후로, 현존하는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청나라 도광 3년(1827년)에 출판된 것입니다. 게다가 은 송나라의 충신인 악비가 만들었다는 설마저 있어 그 진위를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과 을 보아도 무술과 그렇게 커다란 관련은 없어 보입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건강도인법과 별로 크게 다를게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전해지고 있는 들이 달마대사시대의 것과 똑같다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아뭏든 이런 점으로도 역사적 사실과 무술세계의 전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2. 삼조 승찬 마지막으로 삼조 승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다른 사람을 다 제쳐두고 승찬에 대해서만 말을 하는 것은 승찬의 인생역정이 남다른데가 있기 때문이다. 승찬은 본래 대풍질(문둥병)에 걸려 죽을 고생을 했는데 이조 혜가대사를 찾아가 자기의 성명도 밝히지 않고 불쑥 말했다고 한다. "제자는 문둥병을 앓고 있습니다. 대사께서는 저의 죄를 참회케 해 주십시오." "그대는 죄를 가져 오너라. 죄를 참회시켜 주리라." "죄를 찾아 보아도 찾을 수0?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느니라. 그대는 그저 불, 법, 승의 삼보에 의지하여 안주하라." "지금 대사님을 뵈옵고 승보는 알았으나 어떤 것을 불보, 법보라 합니까?" "마음이 부처이며 마음이 법이니라.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오, 승보도 또한 그러하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죄의 성품은 마음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혜가는 그를 매우 기특하게 여거 직접 머리를 깎아주면서 말했다. "너는 나의 보배다. 구슬 찬자를 써서 승찬이라 하라." 그 이듬해에 구족계를 받고 그로부터 문둥병이 나아서 2년동안 혜가스님을 시봉하였다. 승찬은 평생을 은거하며 지내다가 나중에 나이어린 도신선사를 만나 법을 깨우쳐 주고 그를 사대조사로 삼았다. 그는 문둥병이 나은 후에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나지 않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그를 '적두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는 수양제2년(606년)에 입적했는데 법회하던 큰 나무밑에서 합장한 채 서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 무당파(武當派)
억울하게 소림사에서 나온 장삼봉이 세운 문파로 짧은 시간에 소림과 더불어 무림의 양대산맥으로 불리워질 정도로 급성장하였다. 불가인 소림사와는 달리 도가쪽에 속하고 무공도 소림의 강맹한 무공과는 달리 부드러움을 위주로 하고 특히 검법에 뛰어나다.
1. 무당의 소재지 무당은 산의 이름으로 호북성 균현에 위치해 있다. 남웅주기에 의하면, 무당산은 하늘로 높이 솟아있고, 그 모양은 향로 같으며 사시사철 안개에 싸여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형주기에 의하면, 무당산은 균현 남쪽 이백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오악의 하나라 한다. 수경주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무당산은 산세가 수려해 봉우리가 향로 같으며 증수가 산기슭에서 발원된다." 무당산기에는 보다 자세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무당산의 둘레는 사,오백리. 많은 봉우리 중에 삼령이란 봉우리가 있는데 높이가 이십여리에 달하며 늘 흰구름에 싸여 있다. 해가 이곳에서 떠올라, 이곳에서 저물어 또한 일조산이라 한다. 하여 많은 참배자가 모여들며, 도관이 많이 세워져 있다." 여지기에 의하면, "무당산은 모두 72봉과 36암, 24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천주봉. 일명 자소봉이라 한다." 삼재도회무당산도고에는 무당의 위치가 옛이름으로 적혀 있다. "무당산은 양양부 균주성에 위치해 있다."
2. 무당산의 이름과 신화 형주기에 의하면, 무당산은 일명 선실, 일명 태화라 한다. 수경주에 의하면, 무당산은 태화산, 혹은 삼상산, 혹은 선실이라 한다. 그외에도 무당산은 사라산, 태악, 대악으로도 불리워졌다. 무당산이란 이름은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원나라 대오룡령응만수궁비에 의하면 "양한 균방 부근에 산이 있어 그 둘레가 팔백리에 달하니...산의 이름은 태화였다. 한데 원무신이 이 곳에서 득도하여 이름을 무당이라 고쳤다. 원무신이 아니면 이 산을 당할 수 없다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명나라 때 유삼오가 쓴 무당산오룡령비에 의하면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원천지기의 신이 건원씨 때 정락국에서 태어났다. 열다섯이 되던 해, 그는 요마를 소탕하겠다는 일념으로 부모의 곁을 떠났다. 하여 옥청자원군으로부터 무극상도를 전수받았다. 그후 바다를 건너 중원으로 돌아와 명산을 순례하던 중 어느날 한 산봉오리에 올랐다. 당시 그 산에는 자소면양이란 요귀가 기거하고 있었으니 원천지기의 신은 검은 낙타의 뿔로 만든 검으로 요귀를 죽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했다. 그 산이 바로 무당산이다." 원나라 성거천의 대천일진경만수궁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산봉우리의 최고봉은 남암이라 한다. 암앞에 동굴이 두개 있으니... 이름하여 대안황애와 천연정극풍천이라 한다. 위로는 뜬 구름 아래로는 가파른 절벽. 원숭이가 떼지어 살며 야수들이 우굴거린다. 사람은 이곳으로 한 걸음도 들여놓기 어렵다. 그런데 용한년대 허위지정이 내려와 사람으로 둔갑하여 이 산에서 수도를 했다. 도를 터득한 후 그는 용을 타고 승천하였으니 원무지신이라 한다." 이러한 신화는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원나라 사람 식자홀이 그 전설의 허구를 파해쳤다. 그가 저술한 무당사적서에 의하면 "임금의 명을 받들어 균주성에 부임했다. 무당산이 복지라는 것을 일찍이 전해 들은 것이 있어 전설에 대한 사실을 파헤쳐 나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애기가 제각기 달라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3. 참고 사항 : 무당파(혹은 무당도)는 장삼봉이 세운 문파가 아니라 적어도 당나라 말기에는 성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교의 일파로서의 무당도는 원나라 말기에 전란에 의해서 거의 파괴되었다가 명나라 성조 영락제에 의해서 부흥되었다. 성조는 1412(영락 10)년 칙령을 내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당산은 천하의 명산이고 현천상제를 모시는 곳이라 도관이 있었는데 원말의 소란으로 모두 타 버리고 말았다. 자신은 즉위할 때 신명의 가호를 받았기때문에 무당산에 도관을 건립하여 태로 부처의 영을 위로함과 동시에 천하만민의 복을 기도하려 한다고... 성조는 삼십여 만명을 동원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玄天玉虛宮, 興聖五龍宮, 大聖南巖宮, 태현자소궁 등 네 도관을 건립했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이 외에도 다섯개의 도관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도관에는 많은 전답이 하사되고, 면세특권이 주어졌다고 한다. 성조가 이런 일들을 한 것은 사실 무당도에 귀의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저명한 도사였던 장삼봉을 자신의 측근에 두려 했다는 설이 있다. 확실히 장삼봉은 무당파와 관계가 있었고 벽곡에도 뛰어났기 때문에(즉 도력이 높았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또 그가 무당파의 부흥에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성조는 호북성 방면의 인심을 사려 했던 것 같다. 무당파는 성조의 도관 건립에 의해 경제적 기초가 확립되고 동시에 도록사(당시 도교의 관리를 맡았던 관청)의 한 자리에 무당파의 도사가 임명되어 도교의 관리 행정면에도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무당파는 연단과 驅邪를 본령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영종 때부터는 환관이 무당산을 관리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이용을 당하기도 했다( 참조).
■ 곤륜파(崑崙派)
구대문파의 하나인 도가 계열의 문파.
위치 : 청해성 곤륜산(일설에 의하면 하남성에도 곤륜산이 있고, 그 산에 있는 도교 문파가 곤륜파라고 하기도 한다)
■ 점창파(點蒼派)
검법을 특기로 하는 구대문파 중의 한 문파. 가볍고 표홀한 초식을 위주로 한다.
위치 : 사천성 점창산.
■ 공동파
구대문파의 하나. 정파라고 하기에는 사악한 면이 많아서 오히려 정사의 중간에 위치한 문파라함이 옳다.
위치 : 감숙성 공동산.
내력 : 옛날 황제가 은자 광성자를 찾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위치 : 섬서성 남부의 종남산.
■ 개방
거지들로 이루어진 문파. 궁가방이라고도 한다. 구파일방의 일방이 바로 이 개방이다.
1. 총론
개방의 서열은 다음과 같다.
백의개 : 처음 입문하여 삼 년 동안 의결이 없는 거지.
일결, 이결 : 개목.
삼결 : 분타주.
사결 : 각 당의 호법.
오결 : 총타와 각 당의 당주.
육결 : 법개. 전체 방 중에서 의결을 달고 있는 제자들이 보통선거를 하여 선출. 그 조건은 엄격하여, 첫째, 필히 방규를 모두 알아야 하고 방내의 사정에 훤해야 한다. 둘째, 필히 두뇌가 총명해야 하고 사리판단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세째, 필히 이기심을 버려야 하고 강직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네째, 비록 추남일지라도 자비로운 마음을 지녀야 한다.
칠결 : 장로.
팔결 : 후개. 방주를 계승할 사람. 오결 이상의 제자 중 무공이 출중하고 탁월한 영도력이 있고 평소 품행이 단정한 자를 전체 장로의 동의를 얻어 방주가 임명. 후개의 신변은 장로가 책임을 진다.
구결 : 용두방주.
신호 : 의박운천, 행편천하, 오복림문.
신물 : 취옥장.
영약 : 취구환.
2. 개방의 구성
방주 1명과 여러명의 장로들 그리고 1대서부터 9대제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장로들과 제자들의 서열은 등에 매달고 다니는 푸대자루의 수로 구분하며 방주는 타구봉이란 신물로 방주임을 입증한다. 개방의 방칙은 상당히 특이한데 의를 숭상하라는 단 한가지의 방칙을 지닌다. 단 한가지 방칙이지마는 이 방칙을 지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일인지는 다 아시는 일일것이다.
3. 개방의 입단
개방에 입단시에도 특이한 법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입단시에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야만 한다는 것인데. 대개 결혼한 사람은 가족에게 모든 재산을 남겨주고 나오던지, 아직 미혼일 경우는 처분한 재산을 주위의 가난한이에게 나누어준다. 즉 거지들의 집단인 개방에 가입하려면 완전한 거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인데. 신기하게도 불가의 명언인 공수래 공수거와 딱 맞아떨어지는 사례이다.
4. 개방의 방주
개방의 방주는 간단히 말하자면 거지왕초이다. 보통 거지의 왕초라면 대개 그 사람을 깔보지만 개방거지의 왕초라면 무림에서는 대접해 주는 실정이다. 그만큼 개방방주의 권위는 상당하다. 그에 따라서 개방의 방주는 무공도 무공나름이지만 인품을 더 따지는 실정이며 방주의 추대는 전대방주가 후대방주에게 물려주는 형식이다. 만약 여기서 새로이 추대될 방주를 개방원들이 반대한다면 그 사람은 방주에 추대될수없다. 또 방주는 방주로 추대될때 모든 개방거지들의 침을 한번씩 받도록 되어있는데. 아마도 거지는 침세례나 받으면서 다니는 존재이니 거지의 왕초는 모든거지의 침세례를 받아봐야한다는 약간 유머러스한 생각에 그 근거를 두고있다고 보여진다.
5. 개방의 독문무공 개방도들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여러가지 잡다한 무공을 많이알지만 독문무공을 꼽으라면 단연코 타구봉법과 강룡십팔장을 꼽는다. 타구봉법은 방주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무공이며 강룡십팔장은 그 위력으로는 무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고있다 할수있다. 타구봉법의 전수는 방주로 추대하도록 결정이 난후 정식취임까지의 시간사이에 완벽히 배워야하며 반드시 구두로 전수해야지 비급같은것을 써서는 절대로 않된다는 원칙때문에 방주는 자질이나 오성도 뛰어나야한다. 강룡장은 장력이 거의 강기의 수준이나 근력과 내공을 빨리 소모시킨다는 단점이 있다.
6. 알려지지 않은 개방특유의 진법 '타구진' 대개의 사람들은 개방에 독문무공만이 있고 특유의 진법은 없는 걸로 아실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 우리 개방에도 개방만의 독문진법이 있다는 사실!! 그 진법의 이름은 타구진으로 약 800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서 이루는 대진이다. 타구진의 특징은 허술하면서도 탄탄한 구성인데. 타구진을 펼칠시에는 진을 이루는 거지들이 제각각 구걸을 하는 동작이나 술취해서 비틀거리는 동작등을 취하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거지들이 모여서 푸념하는것 같지마는 실상으로는 거의 완벽한 위장공격을 하는것이다. 대개의 적들은 타구진이 펼쳐지면 그 소란스러운 모습에 당황하므로 일종의 심리전효과도 얻을 수있다. 진법의 기초는 음양오행설에 그 근거를 두고있는것 같다.
7. 개방의 신물 '타구봉' 타구봉은 약 1m 정도의 청록색은 띈 죽봉이다. 길이, 무게등이 타구봉법을 펼치기에 딱 알맞고 단단하기 그지없어서 타구봉법을 시전하는데 이 타구봉이 있다면 그 위력은 한층 배가된다. 이 타구봉이 신물이 된 근거는 타구봉법이 방주만의 무공이기 때문에 그 타구봉법을 펼치기가 꼭 알맞은 이 타구봉이 신물이 된것으로 추측된다. 개방인들은 이 타구봉을 보기를 방주보듯해야 한다고 한다.
■ 전진(全眞)
도교의 문파로서 도문의 종주라고 일컬어졌던 문파이다. 개파 조사는 송나라 말의 왕중양 진인이라고 한다.
[그밖의 문파]
■ 배교(拜敎)
마교의 다른 이름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마교에 흡수된 하위 세력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불(火)과 광명을 숭배하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가 중국에 전래되어 토착화한 종교이다. 흔히 사악한 저주의 주문과 환법, 기문둔갑법, 술법으로 무장한 사파 무림의 대표적인 세력으로 묘사된다.
■ 녹림(綠林)
산 도둑을 일컫는 말. 전한이 망하고 왕망의 신이 건국되었을 때 농민반란군들이 녹림에 터를 잡고 도적질을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 녹림십팔채(綠林十八寨)
산 도둑은 점차 통합되어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게 되는데, 이들은 험준한 산악에 산채를 짓고 이를 근거지로 하여 노략질을 일삼았다. 그 대표적인 세력들이 18개가 있었으니 이를 녹림십팔채라고 한다.
■ 뇌음사(雷音寺)
천축에 있던 전설적인 밀교 사찰. 소뇌음사가 사악하고 이기적인 문파로 묘사되는 것에 반해, 대뢰음사는 공명정대하고 중생제도적인 문파로 묘사된다. 인도의 소승불교적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승불교적 설정이라 보인다. 천하에서 가장 강하고 빠른 번개를 본딴 기공과 장공, 검공을 주된 절기로 가지고 있는 문파로 묘사된다.
■ 동정십팔채(洞庭十八寨)
동정호를 주무대로 노략질을 일삼는 수적들이 18개의 준독립적인 수채들로 세력을 형성한 뒤 이들의 연합으로 조직된 거대 방파를 말한다. 총채주와 각 채주들이 지도부를 구성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녹림에 속한다. 마교(魔敎) 페르시아에서 발생한 조로아스터교가 중국에 전래되어 현교, 명교, 배화교, 마니교로 불리며 유행하였지만, 그 교리의 이질감, 극단적인 이분법, 하급 계층을 중심으로 한 신자들의 분포, 교리와 신자들의 계층적 성격 등으로 인한 반체제, 반정부 성향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대대적인 탄압을 받고 지하로 숨어들어 가게 된다. 그들은 송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방랍의 난, 원을 몰아내고 명을 세우는 데 일조한 농민봉기(진우량, 주원장 등이 중심이 됨)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정부의 탄압에 대항한 일반 민중종교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주로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가 자기 세력 유지의 관건이 되었던 사족, 세가에 기반한 무예가들은 이를 사교화하고 멸시, 배척하였다. 무협소설에서는 극악한 마도의 종교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는 지배자의 입장을 반영한 관점에 기인한다.
1. 조로아스터교페르시아인 조로아스터란 사람이 창시한 교로서 배화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을 숭배하는걸로 알려져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최고신이자. 광명과 정의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하고 있다. 조로아스터 교는 페르시아의 국교로 상당히 번성했던 종교이다.
2.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아베스타"아베스타는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으로 아베스타란 단어의 뜻은 지식을 의미한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인 아후라 마즈다가 조로아스터에게 계시한 지식을 말한다.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에 편찬되었으며 기도와 의식, 제신에의 찬가, 일상제사의 관한 기도문 등 모두 5부로 이루어져 있다.
3. 명교의 구성교주 한 명을 중심으로 하여서 광명좌사와 광명우사가 교주를 보필하고 그 밑으로 사대 호법이 있으며 또 그 밑으로는 오산인이 있다. 그리고 별동정예부대가 있는데 이를 오행기라 한다.
4. 명교의 상징물인 '불'명교의 상징은 불이다. 모든 번뇌를 태운다고한다. 아울러서 착한이의 영혼을 깨끗하게 소제해 주고 악한이의 영혼은 태워 소멸시켜 버린다는 뜻도 있다.
5. 성화령김용의 의천도룡기에 나왔던 명교의 교주신물. 백금에 현철과 황철사를 섞어 주조한것으로 엄청난 고온에서도 녹지 않고 절대로 깨어지지 않는 성질을 지녔으며 그 표면에는 페르시아의 살수무공이 적혀 있다.
6. 명교의 대표무공 '건곤대나이'이것은 완벽한 무공이라기보다는 무공과 심법의 혼합형태 같다. 순전히 내공에 의지하여서 힘을 내긴 하나 그 발휘되는 힘은 엄청나서 웬만한 바위도 일격에 부술 정도이고 고단계로 가면 적의 공격을 마음대 있으며 배우는 이의 내공수준과 오성에 큰 영향을 받는다.
7. 명교의 첫째가는 특징 '충성심'명교의 교인들은 충성으로 말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임. 게다가 서로 돕는다는 교리 덕분에 단체공격시에 대단한 위력을 보여준다. 8.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마교는 명교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정부에 의해 금지된 종교는 거의 마교로 불리웠다.
■ 모산파(茅山派)
대강 3세기 말에서 4세기에 걸쳐 발생한 문파로 옥주궁파라고도 한다. 이 파의 개조는 삼모군 또는 진의 관리인 위서의 딸인 위화존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위화존의 일화는 제10권 [상청제일대태사] 편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위화존은 24세 때 부모에 의해 억지로 어떤 남자에게 시집 보내졌는데 그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얻게 되었다. 남편이 하남성의 현지사로 발령 받았기 때문에 임지로 동행하였으나, 그녀는 남편과는 다른 방을 사용하며 부부의 교합을 금하고 재계하고서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하였던 도교의 책을 읽으며 참깨와 다른 약초를 먹곤 하였다.
그러던 중 태강 9년(288) 12월 16일 한밤중에 돌연히 태극진인 등의 선인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31권의 도서를 주었다. 그녀는 81세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거기에서 서왕모의 영접을 받아 자허원군이라고 하는 선녀의 자리를 얻었다." 모산파는 남북조 시대에서 당대에 걸쳐 불교와의 논쟁에 큰 활약을 하여 교리에 밝았으나 후대에는 많이 약화되어 방랑 및 탁발행을 하여 주문 및 부적 쪽의 법술면을 치중하는 문파로 많이 변모되었다.
■ 묘강, 남황(베트남)
■ 밀교(密敎)
7세기 후반기에 흥기하였던 불교의 한 파. 법신 대일여래가 자기 내증의 법문을 개설한 비오진실의 교법. 그 교법이 심밀, 유현하여, 여래의 신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터득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이름이 있다. 금태양부의 , 을 그 성전으로 한다. 비교. 비밀교. 진언밀교라고도 한다.
■ 밀종(密宗)
진언종(眞言宗)의 딴 이름. 무협소설에서는 대개 천축에서의 밀교를 말한다.
■ 장강수로십팔채(長江水路十八寨)
양자강을 무대로 노략질을 자행하던 수적들이 18개의 준독립적인 수채들로 세력을 형성한 뒤 이
들의 연합으로 조직된 거대 방파를 말한다. 총채주와 각 채주들이 지도부를 구성한다. 넓은 의미
에서는 녹림에 속한다.
[무림세가(武林世家)]
중국은 씨족적 기반이 강한 사회로, 성씨의 영향력이 아직도 막강한 사회이다. 무협소설에서는 하북 팽가, 남궁세가, 문인세가, 황보세가, 제갈세가, 모용세가 등이 자주 나온다. 정파 무림의 대들보로 묘사된다.
■ 남궁세가(南宮世家)
귀신도 곡할 기관진식과 천재적인 용병술로 이름높은 무림세가. 쾌검과 중검 등 절대검공으로도 이름높다. 제갈공명의 후손으로 묘사되는 이른바 제갈세가가 나올 경우에는 쾌검과 중검 등 절대검공으로 이름높은 무림세가로 나온다. 오대세가의 일원으로 구파일방과 더불어 정파무림의 또다른 지주이다. 정파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천하 무림을 장악하려는 위선적인 세력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 당문(唐門)
위치 : 사천성 성도 부근
특징 : 암기와 용독술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명가들을 배출하는 무림세가. 조금이라도 빚진 것이 있으면 넘어가는 법이 없어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암기제조법과 암기술, 용독술을 유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데릴사위제를 채택하고 있다.
암기 : 독질려, 혈적자, 비황석, 단혼사, 육혼망, 귀왕령 등 수십, 수백종이나 된다. 절기 : 만천화우, 비황진 등 대뢰음사(大雷音寺) 대뢰음사(大雷音寺) 천축에 있던 전설적인 밀교 사찰. 소뇌음사가 사악하고 이기적인 문파로 묘사되는 것에 반해, 대뢰음사는 공명정대하고 중생제도적인 문파로 묘사된다. 인도의 소승불교적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승불교적 설정이라 보인다. 천하에서 가장 강하고 빠른 번개를 본딴 기공과 장공, 검공을 주된 절기로 가지고 있는 문파로 묘사된다.
■ 모용세가(慕容世家)
중국사람들은 오랑캐라고 천시하는 세가. 모용은 진시황에 의해 통일되기 이전의 7개국중에서 연나라 왕족이다.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해준 전진이나 동진도 연나라의 후손.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 우리민족과도 가깝다. 무협지 같은데 보면 무림제패를 꿈꾸는 나쁜 사람으로 나오는데 그것은 중국인의 화이관적 시각이다.
■ 보타문(普陀門)
위치 : 절강성 항주만에 있는 주산 군도 중의 한 작은 섬인 보타산에 있다.
특징 : 오대산, 아미산, 구화산과 더불어 중국 불교의 4대 명산.
기원 : 1,00년전, 남해 관세음이 보타산과 이웃하고 있는 작은 섬 낙가산에서 불교를 포교했다. 10세기경, 일본 승려 혜악이 산서성 오대산에서 관음상을 모시고 일본으로 돌아가던 중 귀로에 배가 암초에 걸렸으나 배가 닿은 곳에 절을 짓겠노라고 빌었던 바, 배가 암초로부터 떨어져서 보타산에 당도했다. 그 땅에 불배거암을 세웠는데 그것이 지금의 보제사(普濟寺)이다. 최성기에는 산 중에 대소 300여 개의 절이 있었고 3,000명의 승려들이 생활했다고 한다. 무협속에서의 보타문 : 남해 보타암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하는 보타문은 비구니(여승)들로 이뤄진 청정도량으로 남해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나온다. 강호 상의 위기가 닥치지 않으면 거의 출도하지 않는 은둔세력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소림, 무당과 더불어 정파 무림의 지주로 검공에 강한 것으로 묘사된다. 보타문의 의발을 이은 사람은 검도의 절정고수로 검후(劍后)로 묘사된다.
■ 방문좌도(傍門左道)
비정통파의 잡학. '방'은 주류가 아니고 곁가지임을, '좌'는 옳지 않은 쪽을 일컫는 말.
■ 진주언가(晋州彦家)
언가권으로 유명한 진주언가는 권법과 강시술 등으로 유명한 무림세가이다. 기괴하고 악랄
한 수법으로 경원시되고 있지만 사파는 아니며, 정사 중간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에 따라서
는 사파로 묘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