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친일에 공(功)은 없다
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공동으로 [친일인사 명단]을 2년 5개월여만에 추가로 발표하였다. [친일인사 명단] 발표장엔 2년 5개월여 전이나 29일 당시나 반대단체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발표의 파장 역시 2년 5개월여 전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 않다. 발표 당시와 직후에, 반대단체들의 고성과 완력 저지 시도는 물론 명단에 포함된 인사들의 후손 및 제자들의 법적 대응 시사와 일부 정치인들의 부정적 촌평이 있었다. [친일인사 명단]의 사회적 파장과 옳고 그름을 진단해보자.
그 사람이 왜 '친일'이냐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편찬하는 [친일인사 명단]은 많은 사회단체들의 참여와 더불어 국고지원을 일부 받고 있다는 역사적, 시대적 대표성을 띠고 있다. 이 시대가 명단에 수록된 인물들을 친일인사로 인정하고, 인정해야한다는 당위성을 나타내는 사료史料로써 기능하게 된다. 그러나 매번 [친일인사 명단]의 발표 때마다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일부 정치인들의 부정적 촌평이 끊이질 않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왜 친일이냐'는 기준의 차이에 있다.
<29일 발표한 친일인사 명단에 들어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작곡가 안익태 선생>
이번에는 더욱 그럴 것이 1차 때 [친일인사 명단]에 포함될 것인가 말 것인가가 확정되지 않던 인물들이 대거 포함이 되었기에 '그 사람이 왜 친일이냐'는 항의 및 논란이 만만치 않게 존재하고 있다. 이번 명단의 발표에서는 대한민국의 5~9대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신현확과 대한민국의 국가인 애국가를 작곡한 작곡가 안익태 선생, 무용가 최승희, 아동문학가 이원수 등 흔히들 훌륭한 인물로 알고 있거나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문화 형성 등에 있어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들이 포함되었기에 그 논란이 더욱 분분하다.
이러한 여론 형성은 두 가지의 양면성을 지닌다. 논란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써는 우리 사회가 획일화되지 않은 성숙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에 일부 인사들의 이의나 항의 과정 중 욕설을 비롯한, 궤변은 물론 '무조건 아니다'식의 우기기가 존재하는 것은 아직 개발독재시대의 획일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찬반양론의 여론에 있어 확실한 한 가지를 알아둬야 한다. 바로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표한 [친일인사 명단]은 철저하고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정당성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이러한 [친일인사 명단]에 반대하는 인사들의 주장은 그들이 친일을 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아닌 대부분 광복 이후의 주관적 업적에 대한 추상적인 논리들에 근거하고 있다. [친일인사 명단]에 포함된 논리는 간단하다. 친일을 했으니 그런 것이다.
광복 이후 공(功)을 세웠다고 역사가 변하지는 않는다
우선 '친일'에 대한 의미와 기준부터 정립하자. 사실 '친일'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는 그 단어가 우리에게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의미보다 그 강도가 훨씬 약하다. '친한파', '친러파', '친미파' 등과 같은 외교용어에서 볼 수 있듯 '어떤 국가에 우호적'이라는 의미로 국가 약어에 '친(親)'자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 통념이다. 이리하여 지난날 가수 조영남 씨가 이렇게 단어 자체만을 인식하여, 자신의 저서에 섣불리 '친일선언'이라는 표현을 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현재 우리가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식하는 '친일'의 의미는 '부역자'의 의미와 상통한다. '부역자'란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 또는 가담한 사람'이란 의미로 '친일'로써의 '부역자'는 '일본의 강제적 한일합방에 기여하거나 이후의 일제의 식민지배에 가담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친일인사 명단] 편찬의 바탕엔 이렇게 명명백백한 대전제가 성립되어있다. 하루 아침에 뚝딱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최초로 개항한 1876년부터 일제가 패망한 1945년까지 70년 간의 역사와 광복 이후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반민특위'를 비롯한 숱한 노력들의 결과로 만들어진 대전제인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전성기에서 패망까지의 주역인 히로히토의 일본군 사열 모습>
이러한 역사의 대전제를 부디 자신의 편익과 정치적 사고 또는 논리 그리고 이해관계로 변형시키거나 무시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전제에 개의치 않으며 이를 깡그리 무시한 상태에서 말도 안되는 '자신들만의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상당수 존재한다. '이 사람이 광복 후에 어떤 사람이 됐는데, 친일인사에 포함시켰느냐!'는 말만 반복재생한다. 이는 역사의 몰이해 상태에서 역사를 논하자는 것이며, 설득력있는 논리가 부재한다.
[친일인사 명단]에 몇몇 인사가 포함된 것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대표적이자 주된 논리는 '비록 일제 때 부역은 했지만 광복 이후 대한민국 발전에 이바지했는데 그런 사람을 친일인사에 넣다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약간의 살을 덧붙이는 이들도 간혹 있는데, '일제가 식민지배를 했지만 덕분에 잘 살게 됐잖아!'라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올바른 상식을 지녔다면, 이러한 궤변에 화가 날 것이다.
그들의 원하는 데로 몇몇 인사들을 [친일인사 명단]에서 빼내려한다면 그들은 궤변 대신 그가 '친일을 하지 않았다'라는 객관적인 증거나 또는 '그 이면에 일제의 물리적 강제와 압제'가 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만약 누군가가 전시상황도 위급상황도 아닌 가운데 사람 한 명을 살해했다. 그 이후 그 누군가가 위험에 빠진 사람 둘을 살렸다면, 이는 살린 사람이 2명이고 죽인 사람이 1명이니 '2 - 1 = 1'로 결과적으로 한 명을 살린 것이 되는가? 역사와 도덕의 최소한의 선인 법조차 이러한 궤변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물며 우리 역사의 정식 사료 중 하나가 될 [친일인사 명단]에 그러한 궤변을 적용시켜야 하는가.
"친일 문제는 공과를 균형있게 봐야 한다"는 말의 모순
오늘 이명박 대통령이 "친일 문제는 공과를 균형있게 봐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 부디 평소의 신념을 투영한 '숙고하고 한 말'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 말은 대단히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1명 죽이고, 2명 살리면 결과는 1명 살린 것'이란 공식을 적용하자는 것인가. 이러한 궤변이 아니고서야 도대체 '친일'에 공(功)이 있을 수가 있는가. 수탈은 기본이고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 각지에서 학살을 자행한 것이 당시의 일본이었다. 친일 부역자들은 그러한 일본의 행위에 가담한 자들이다. 동족의 핍박을 스스로 나서서 자행하던 자들인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균형인가.
진정 어떤 한 인물을 대통령의 말처럼 '균형있게' 그리고 공정하게 조명하려면 일제 시대의 사실을 다룬 [친일인사 명단]이 아닌 그 인물의 전 인생을 다룬 '전'나 시기를 구애받지 않는 전체적 역사를 다룬 '역사책'에서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인정하는 것이 맞다. 이것이야 말로 '공과를 균형있게' 본답시고 과오는 빼버린 채 공적만을 포장하여 미화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균형'이다.
역사는 권력이나 금권, 정치 지형이 아닌 역사가 평가한다
[친일인사 명단]은 말 그대로 일본의 침탈기간(준비기간을 포함한) 동안 '친일 인사'를 정리하고 그들의 '친일 행적'을 설명한 사료(史料)이자 객관적 사실의 보고이다. 일제의 학살에 가담하고 동족을 핍박한 인물들의 행적을 사실 그대로 편찬한 것이란 말이다. 각 인물들이 행한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를지는 모르지만 결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광복 이후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호평을 받았지만, 다른 잘못도 아닌 동족의 학살과 핍박이라는 인륜의 최악을 자행한 일제를 도와 봉사한 일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도 않고, 사실을 고백하여 속죄하지도 않은 사람들에 대해 최소한 그 사람들이 그러한 일들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기록해놓겠다는 정의와 진실의 행동에 대해 부디 이해타산과 정치 논리로 접근하지 마라.
[친일인사 명단]에 몇몇 인사의 포함을 격렬히 반대하는 이들 또한 그러한 행동을 하는 자체로써 '권력'과 '재산'이 아닌 '역사'만이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옛날 고도의 정신세계를 향유한 훌륭한 선조들은 역사에 깨끗한 이름을 남기려 부정한 행동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것이 역사이다. 사실이 사실로써 평가받는 자리이다. 객관적인 자료로 평가받고 그 자료가 틀렸다면 후일 다른 이가 또 다른 객관적 자료로써 다시 평가할 것이다. 역사는 이데올로기나 정치 권력 그리고 재산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역사 그 자체로써 평가받는 것이다.
이의가 있다면 친일을 하지 않았다는 객관적인 자료로써 반박하라. 결코 정치 논리나 권력으로 역사에 접근하지 마라. 훗날 역사에 추한 모습으로 남지 말길 바란다.